심재영 기자 <jysim@cmn.co.kr>
[기사입력 : 2026-04-13 오후 5:47:14]
중소벤처기업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4월 13일 아우딘퓨쳐스에서 중동전쟁 관련 K뷰티 기업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제공=식품의약품안전처][CMN 심재영 기자] 올 2분기 화장품 업종의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기준치를 웃돌며 긍정 전망이 우세하게 나타났으나 이 조사가 이뤄진 3월 중순 이후 중동전쟁이 장기화하면서 K뷰티에 미치는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원료 수급 불안과 해상운임 급등이 가시화된 가운데 식약처를 비롯한 정부 관계 부처, 대한화장품협회를 비롯한 업계가 비상 체제로 전환해 대응에 나선 상태다.
반도체‧화장품 전망 ‘맑음’(?)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3월 18일까지 전국 2,271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8일 발표한 ‘2026년 2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 조사에서 화장품 업종은 103을 기록, 기준치(100)를 상회하며 반도체(118)와 함께 긍정 전망이 우세한 업종으로 꼽혔다.
수출기업 BSI가 전분기 대비 20포인트 급락하고, 정유‧석유화학(56), 철강(64) 등이 중동 리스크에 직격탄을 맞은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그러나, 이 조사가 3월 중순 이전에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만큼, 미국-이란 간 군사적 충돌이 본격화되고 호르무즈해협 봉쇄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데다 4월 11일 종전 협상마저 결렬된 현재 상황에서 K뷰티도 피해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담을 통이 없다’ … 나프타 쇼크
전쟁이 한 달 이상 이어지면서 K뷰티 공급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위기의 핵심은 두 갈래다.
첫째, 원료 정제 과정에서 추출되는 석유화학 기초 원료 나프타의 수급 불균형이다. 플라스틱 용기와 포장재의 핵심 소재인 나프타 가격 변동성이 극도로 커지면서 화장품 용기 제조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특히 피해는 중소 용기 제조업체에 집중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통상 직전 3개월 평균 구매량을 기준으로 석유화학업체에서 원료를 공급받는데 전체 물량이 달리는 상황에서 대형사에 밀려 원료 확보 순위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소규모 업체는 이미 생산라인 가동을 멈췄고, 다수의 용기 제조사들은 고객사에 원료 변경과 납기 지연, 단가 인상을 긴급 공지하며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대형 포장재 기업도 중동 리스크 장기화 시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둘째, 호르무즈해협 봉쇄 우려로 촉발된 해상운임 급등과 물류 차질이다. 수출길이 막히면서 올리브영은 중동으로의 배송 차질을 공지했고, 일부 업체들은 우회 항로 이용이 불가피해져 물류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모 화장품회사 관계자는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경우, 우회 운송이 불가피해 물류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고, 유가 상승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물류비와 생산비 등 원가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계면활성제‧글리세린 가격도 들썩
위기는 포장재에만 그치지 않는다. 화장품 내용물 제조에 필수적인 원료들도 가격 급등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계면활성제와 글리세린이다.
계면활성제는 클렌저, 샴푸, 폼 워시 등 세정류 제품의 핵심 원료로, 물과 기름 성분을 균일하게 섞어 주는 기능을 한다. 합성 계면활성제의 상당수는 나프타에서 출발하는 PEG‧PPG 계열 유도체와 석유 기반 원료를 사용해 제조된다. 나프타 가격이 전쟁 발발 이후 배럴당 56달러대에서 140달러를 넘어서는 등 두 배 이상 폭등하면서 계면활성제 원료비도 연쇄적으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또한 글리세린은 사실상 화장품 전 제형에 들어가는 보습 핵심 원료다. 정제수 다음으로 사용량이 많을 만큼 스킨케어 처방에서 빠질 수 없는 성분이지만, 이번 중동전쟁 여파로 가격 상승폭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글리세린은 팜유‧대두유 등 식물성 유지나 동물성 지방 가공 과정에서 부산물로 얻어지지만, 원료 가격 상승과 공급망 교란이 간접적으로 원료 비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글리세린은 이미 전쟁 이전부터 가격이 오름세였는데 이번 전쟁 여파로 상승폭이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결국 나프타발 충격은 포장재→용기→계면활성제→글리세린으로 이어지는 원가 인상 도미노의 형태로 K뷰티 가치사슬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는 재고와 기존 계약 물량이 완충 역할을 하고 있지만, 5월 이후 원료‧용기‧제조 단가 인상이 누적될 경우 일부 브랜드를 중심으로 출고가 조정이나 제품 구성 변화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업계 협력으로 위기 극복해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 관계 부처와 업계 단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나프타 수급 어려움으로 인한 포장재 부족 문제 해소를 위해 4월 3일 적극행정위원회를 통해 대체 포장재 사용 시 표시‧기재사항을 스티커로 부착하는 것을 6개월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화장품뿐 아니라 식품, 위생용품, 의약외품에도 적용되는 조치로, ‘중동전쟁으로 인한 물품의 수급 불안정 해소’를 위해 산업통상부, 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공조한 결과다.
또한 중소벤처기업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4월 13일 화장품 제조‧판매 전문기업인 아우딘퓨쳐스를 방문해 중동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화장품 업계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 기업 대부분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원료, 포장재 등 원부자재 수급 차질과 단가 인상을 가장 큰 애로로 호소했다. 이로 인해 원료나 용기 제조기업들은 제품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며, 화장품 ODM 기업들도 용기 등이 제 때에 공급되지 않아 고객사 납기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물류 문제에 대한 지적도 많았는데, 물류 비용 폭등과 함께 운송 지연으로 인해 원부자재 수입은 물론 화장품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K뷰티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많았다.
대한화장품협회도 중동 전쟁으로 인한 피해 상황 파악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대형 OEM‧ODM사가 중소 브랜드사의 원료 공동 구매를 지원하고, 원료‧용기 제조업체와 브랜드사 간 납기‧단가 협상에서 업계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향이 논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